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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회 론

by Wesley Yoon   10/30/2016     0 re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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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신년 CIS 지부장 수양회 특강

교 회 론
윤 웨슬레(용석)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여러 가지 변화를 체험한다. 우선 비참한 죄인이 변하여 새 사람 되는 존재의 변화를 체험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신분의 변화를 체험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관계성의 변화를 체험한다. 이와 함께 우리는 신앙의 공동체에 참여 함으로써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람들과 신앙의 교제를 나누게 된다.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사회성의 변화가 일어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신앙의 공동체에 속하여 신앙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삶을 살산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신앙의 공동체를 교회라고 부른다. 교회는 분명히 사람들이 모인 인간의 모임이지만, 세상에 나타난 그 어떤 모임과도 다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수한 성질들을 규명하여,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교회를 연구하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틀어서 교회론이라고 할 때, 교회론에서 다루어야 할 것은, 우선 교회란 무엇인가? 정의를 내리고,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이 무엇이며, 교회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무엇이며, 교회는 어떤 형태로 운영 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더불어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 교회가 가지고 있는 권세와 교회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될 것이다.

I. 교회란 무엇인가?

1. 교회의 정의

개혁주의 신학자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은 “교회는 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참 신자들의 공동체이다”고 정의한다. 그러나 한스 큉(Hanse Kung)은 교회라는 개념이 주로 교회가 처한 그때마다의 역사적 형태에 의해서 규정되어 온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3세기까지의 교회상이 적대적인 이교도 국가와, 박해 받지만 승리하는 교회의 대립 관계에 의해 규정된다면 4세기 이후의 교회상은 승리 위에 건설된 국가 교회와 기독교적 제국의 조화에 의해 규정 된다. 로마의 히폴리투스는 로마 제국을 사탄이 그리스도의 왕국을 모방한 것으로 보았지만, 제국의 교회사가이며 궁정 감독이었던 유세비우스는 로마 황제를 제국과 비슷한 시기에 성립된 기독교의 선구자로, 기독교 신앙을 가진 황제를 이단 및 불신앙과 싸우는 교회의 후견인으로 묘사했다. 이러한 것들은 교회란 무엇인가를 정의 내린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임을 말해 준다.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고, 각 교파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서 교회관은 약간씩 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고 해도 교회는 일반 사회단체와 다른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라는 것이다. 이점에서 벌콥(Louise Berkhof)은 “교회란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사람들을 자신에게 연합시키고 그들에게 참된 믿음을 주어서 그 교회를 자기의 몸 곧 성도의 무리를 구성한다는 것이 개혁주의의 개념이다.”고 하였다. 교회의 본질과 시작은 하나님께 있으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개혁주의 입장에서 교회란 무엇인가 뼈대를 잡고, 이와 더불어 교회에 대한 여러 시각들을 참고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된다.

2. 교회의 명칭

복음주의 신학자 밀라드 에릭슨(Millard J.Ericson)은 교회에 대한 성경적 언어적 정의를 다루면서, ‘교회-Church'라는 단어는 “주께 속해 있는”을 의미하는 희랍어 “퀴리아코스”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한스 큉은 이것을 간략하게 “주님의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에릭슨은 이 단어들은 신약 성경의 헬라어인 “에클레시아”의 조명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한스 큉은 에클레시아란 종교적인 집회가 아니라 정치적 집회를 가리키는 말로써 그 자체로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앞에 “주님의”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에만 교회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고 한다. 성경상 최초로 언급되고 있는 에클레시아란 명칭은 마16:18에 나타나고 있다. 순교자 스데반은 출애굽한 후에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광야교회”라고 언급 함으로써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까지 교회의 개념을 확대하고 있다. 복음서, 디도2장, 디모데서, 유다서, 요한 1,2서, 벧전후서에서는 에클레시아라는 말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은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서는 특별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 말은 예배를 위해 모인 모임을 생각했다는 것이 명백하다. 고린도나, 데살로니가와 같은 특정 도시들에 있는 교회들 뿐아니라 개인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들에 대한 언급 역시 존재한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면서, 바울은 또한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롬16:5)에도 문안한다.

교회란 명칭을 사용함에 있어 주의 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전체로서의 교회와 지역에 존재하는 지교회의 관계성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루스 밀른(Bruce Millen)은 이렇게 말한다. “성경적 배경은 교회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자들로 구성된 살아있는 공동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가 ‘교회’라는 말을 생각 할 때 언뜻 떠오르는 제도적인 교회의 조직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 조직은 불가피하게 에클레시아에 수반되지만 그것이 교회의 본질은 아니다. 에클레시아는 신약에서 특정한 지교회의 그룹을 의하는데 뿐 아니라(행8:1; 롬16:16; 살후1:4) 시대를 초월하여 전세계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데 사용되었다(마16:18; 고전15:9; 엡5:25). 한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지교회는 전체 교회중의 일부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 자체가 완전한 교회의 모습을 갖춘 완전한 교회이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지교회를 위한 것이고, 교회의 머리와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연장된 실재에서 처럼 지교회에도 충만히 임재 해 계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교회는 전체 교회의 일부이면서, 그 자체가 교회의 전체가 되는 신비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교회는 결코 전체 교회의 부속품이 아니며, 완전한 독립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전체 교회에 속하여 전체 교회를 세우고 있다고 할 것이다.

3. 교회를 나타내는 성경의 다른 표현들

(1) 그리스도의 몸.

고전12:12-27절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눈이요, 귀요, 입이다. 이 비유에서 그리스도는 교회를 상징하는 몸밖에 거하시는 분이시며, 교회가 섬기고 예배해야 할 분이시다. 그러나 엡1:22-23; 엡4:15-16 골2:19에서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는 머리를 제외한 몸의 나머지 부분이다.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할 때 그것은 우리의 모든 생명과 자양분이 그로부터 나오며, 우리가 그에게서 나와 살고, 그러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이 표현이 교회에 대한 신약 성경의 완전한 정의를 말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이 명칭은 보편 교회에 적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엡1:23; 골1:18), 단일한 회중에도 적용된다(고전12:27). 이 정의는 지교회와 보편 교회를 포함하는 교회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바, 특히 교회가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과 교회라는 유기체는 그의 영광스러운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써의 교회의 표상은 그의 지상 사역 기단 동안의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몸과 마찬가지로, 교회가 이제 그리스도의 활동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써의 표상은 교회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연결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서로가 연합된 지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고전12장, 14장). 그러므로 각 지체가 또 다른 지체를 필요로 하고 서로 합력하여 전체적인 몸을 세워가는 것이다.

(2) 성령의 전 혹은 하나님의 집

고린도 교회는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이라고 불렸다(고전3:16. 엡2:21,22에서 바울은 신자들을 ‘주안에서 성전이’되어 가는 또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함께 지어져 가는 것으로 말한다. 여기서 명칭은 미래의 이상적인 교회 곧 보편교회에 적용되었다. 베드로도 신자들이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고 말한다(벧전2:5). 베드로는 성전을 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 비유는 교회가 거룩하고 불가침의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바울은 교회를 가정으로 간주하여 디모데에게 모든 교인들을 규모가 큰 가정의 가족들인 듯이 다루라고 했다(딤전5:1-2). 하나님은 아버지시요(엡3:14), 우리는 그의 자녀들이다(고후6:18).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가정의 형제자매들이다(마12:49-50). 엡5:32에서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보았다. 고후11:2에서는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 함이로다”고 하였다. 요한은 교회의 궁극적 모습을 이렇게 예견하였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계 19:7)”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이 이미지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 관계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관계임을 강하게 나타내 준다.

(3) 위에 있는 예루살렘, 혹은 새 예루살렘, 혹은 하늘의 예루살렘

이 세 가지 형식이 모두 성경 안에서 발견된다(갈4:26; 히12;22; 계21;2). 구약에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과 접촉하는 곳을 상징하는 장소와 스랍과의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처소를 대표한다. 신약성경은 교회를 구약의 예루살렘에 해당하는 영적인 기관으로 간주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교회를 예루살렘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표현에 따르면 교회는 하나님의 처소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교류하는 곳이다. 이 처소는 부분적으로는 땅위에 임하지만 천상의 영역에 속해 있다.

(4) 진리의 기둥과 터

이 명칭이 적용된 곳은 한 곳이다(딤전 3:15). 이 명칭은 일반적인 의미의 교회에 적용되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교회의 각 부분에도 적용되는 것이 분명하다. 이 비유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모든 적들에 대항하여 진리를 수호하고 진리를 지키는 요새이며, 진리를 변증하는 자임을 보여 준다.

(5) 하나님의 백성

바울은 신자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결정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성된다. 그들은 그에게 속하고 그는 그들에게 속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교회의 개념은 그들을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주도권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 다음에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존재하게 하셨다. 신약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한 백성을 선택하신다는 이런 개념이 교회 안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모두 다 포함하기 위하여 확대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과 동일시 되었으며(출15:13,16), 할례는 신적인 소유됨의 증거였다. 옛 계약에서 할례는 새 계약 하에서 마음의 할례로 대체된다(롬2:29). 이스라엘에게 계약은 아브라함과의 계약이었으나 교회에 대하여 이것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확립된 새 계약이다(롬9:6,24; 고후3:3-18). 웨인 그루뎀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과정은 단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불러 예배하는 모임이 되게 하신 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약의 모형의 연속일 뿐이라고 한다. 신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새로운 축복과 특권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성경에서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나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섬기게 하기 위하여 백성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볼 때, 교회는 신약 시대와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성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

4. 교회와 관련된 중요한 주제들

1) 교회와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사이에는 분명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수님은 마 16:18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것으로 부터 우리는 교회와 하나님 나라가 동의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조지 래드(George E. Ladd)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이고, 반면에 그의 교회는 그 통치아래 있는 인간의 공동체이다”고 하였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 혹은 하나님의 통치의 나타남이다. 이것은 그 통치가 오늘날 지상에서 취하고 있는 형태이다. 이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의 구체적인 나타남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속에서 다스리는 어느 곳에서나 발견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을 창조하기 전에도 하늘에 있었는데, 그것은 천사들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복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교회의 일부가 되지는 않았으며,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유일한 나타남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원리적으로는 땅위에서 실현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시적이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 오실 때 비로소 그 절정에 달한다. 현재는 이 나라가 영적이고 무형적인 형태로 실현된다. 신자들은 통치자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구성하며, 세상으로 부터 구별되어 하나님께 헌신하고 서로 유기체적 연합을 이루는 점에서는 교회를 구성한다.

2) 교회와 이스라엘

구약 성경은 야곱의 혈통적 후손들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고, 하나님의 백성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이러한 민족적인 이스라엘은 많은 부분이 영적 이스라엘로 대체된다. 예를 들어 바울은 롬 2:28,29에서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 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하였다. 구약성경에서 문자적인 이스라엘을 가리켰던 어떤 약속들이 신약 성경의 저자들에 의하여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 안에서 성취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호 2:23은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예언하였는데, 바울은 이것을 유대인들과 인방인들에게 똑같이 적용한다(롬9:24). 그러나 로마서11장에서 바울은 동족 이스라엘의 문제를 다루면서, 참 감람나무였던 이스라엘이 꺾이고, 이방인들이 접붙힌바 되었으나, 온 이스라엘이 구원 받게 될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롬11:26). 민족적 이스라엘은 아직도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도 있고, 영접지 않은 자들도 있으나 그들이 국가적으로 교회에 들어와 구원받게 될 날이 올 것임을 알 수 있다.

세대주의 신학자 쉐이펴(Lewis Sperry Chafer)는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과 목적은 지상의 축복으로서 미래에 성취된 것이고, 반면에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약속은 천상의 축복으로 하늘에서 성취될 것이라고 했다. 세대주의자들은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를 분리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지속적으로 신약의 그리스도들을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구약의 약속과 형상과 관련시켜 언급했다(벧전2:4-10).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자비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신약의 신자들과 구약의 신자들을 모두 포함한다. 이렇게 볼 때, 구약의 이스라엘은 구약의 교회였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요, 야곱의 혈통을 이어받은 한 민족으로써의 복합적인 개념을 가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 교회가 새 이스라엘로써 지상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를 대체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은 민족적 개념으로써의 이스라엘만 남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신약의 교회속으로 들어오지 않은 구약의 교회로서 신약의 시대를 살아가기를 원한다고 할 수 있다. 구약의 교회가 신약교회의 그림자라고 한다면, 그들은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3) 유형교회와 무형교회

모든 참 신자들의 교제라는 영적인 면에서, 교회는 무형적이다. 우리는 외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을 보고 내적 영적 변화의 외적 증거들을 볼 뿐이지, 실제로 사람의 마음 및 영적인 상태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그래서 바울도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고 했다(빔후2:9). 그러므로 웨인 그루뎀은 “무형교회란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로의 교회이다.”고 정의를 내린다. 반면에 유형 교회란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보는 대로의 교회이다”고 정의를 내렸다.

어거스틴 시대에 나타난 이러한 구분은 마틴 루터에 의해 처음으로 분명하게 표명되었으며, 칼빈에 의해서도 그의 신학 속에서 마찬가지로 구체화 되었다. 성경에서 주장되는 교회의 특성들과 실제로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인 경험적인 교회 사이의 명백한 불일치들을 다루는 것이 루터의 방식이었다. 그는 진정한 교회는 오직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 즉 구원에 의하여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들로서 구성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구분이 힘을 얻는 것은 현실에 나타난 유형의 교회들이 교회의 본질에 어긋난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유형의 교회에서는 가룟 유다와 같은 자들이 들어 올 수도 있고, 수 많은 변절자, 거짓 교사, 거짓 신자들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들과 연합된 무형의 교회를 강조하게 된다. 로마 카톨릭은 유형의 교회를 강조하며, 세례를 받고 유형의 교회에 들어오기만 하면 구원받은 신자가 된다고 가르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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